500겁이 되어야 현세에서 소매 깃을 스치는 인연으로 만난다고 합니다.

劫(겁)은 시간 단위인데 한 겁이 되려면 사방이 40리나 되는 둘레의 큰 원통에 성경과 불경에서 다 작다는 표현을 쓰는 겨자씨를 잔뜩 담아서 1년에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다 없어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한 민족 한겨레로 만나려면 4천겁의 전생의 인연이 있어야 합니다.

7천겁이 있어야 부부가 될 인연이 된다고 합니다. 요즘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기도 합니다만 엄청난 전생의 인연이 있어서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되고 9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형제자매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만겁이 되어야 사제지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그리고 클래스메이트가 되는 그런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3기생의 인연은 전생에 만겁의 인연이 있어서 된 것입니다. 꼭 잊지 마십시오.   

동지라는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태어난 날은 달라도 같은 날 같은 시에 죽자는 말을 할 수 있어야 동지가 되는 것인데 여러분의 그런 소중한 인연이 평생 가시기를 이 자리를 빌려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치매 걸릴까봐 두렵습니다. 이건 솔직한 심정입니다. 어젠가 그젠가 EBS를 보니까 ‘지상에서 영혼으로’라는 흘러간 명화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본 영화였습니다. 너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훤하던 영화배우의 이름들이 잘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누라하고 같이 봤는데 여자배우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내 전화번호도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한테 직접 찾아가서 물어봤습니다.

내가 ‘치매 걸린 것 아니냐’고 의사에게 물었더니 의사가 ‘치매 걸린 사람은 치매 걸린 사실 자체를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당신은 치매 걸린 게 아니냐고 묻는 순간 치매 걸린 게 아니다’고 해서 안심했습니다.

또 한 가지 두려운 것은 편견입니다. 나는 편견이 아주 두렵습니다. 편견이 어느 날 갑자기 와서 나를 사로잡고 나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는 않을까 늘 조심합니다.

빨간렌즈 안경을 쓴 사람이 안경 쓴 것을 모르면 세상이 다 빨갛다고 합니다. 노란 안경을 쓰고 있으면서 안경 벗을 생각은 안하고 세상이 다 노랗다고 하는 것, 그것이 편견입니다.

가령 눈 성한 사람이 외눈박이 동네에 갔다고 합시다. 그 동네 사람들은 눈 성한 사람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두 눈 가진 사람을 보며 ‘눈이 두 개야 두 개 저런 병신도 다 있어’ 라고 할 것입니다. 외눈박이의 편견은 바꾸기가 힘든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편견에 걸린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저런 편견에 사로 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섬 마을에 태어나서 평생 산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섬 밖 사람이 와서 ‘해가 어디서 뜹니까?’ 라고 묻자 그 섬사람은 너무나 당당하게 ‘뒷동산에 뜹니다.’고 합니다. 평생 해가 뒷동산에서 뜨는 것만 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해는 뒷동산에서 뜨는 것이 아니라 먼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이고, 더 나아가면 해가 뜨는 게 아니라 해는 그냥 그대로 있고 떠돌이 별 지구가 해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지동설을 아는 순간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 편견에서 깨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날 쇠똥구리가 사는 동네에 소가 언덕배기를 오르려 힘을 주다가 똥을 뿌지직하고 쌌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소가 지나가다가 그냥 똥을 싼 것입니다.

그런데 쇠똥구리에게는 큰 난리가 난 것입니다. ‘하늘이 주신 은총으로 1년 열두 달 일용할 양식을 주셨구나’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쇠똥구리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등 동네 쇠똥구리들이 다 모여서 쇠똥을 끌고 가서 차곡차곡 쌓을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만, 하느님이 인간세상을 보고 계신다면, 세상이 참 우습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쇠똥벌레를 내려다보면서 웃는 것과 똑같이 하느님이 인간이 종이 같은 것을 가방 속에 집어넣고, 그걸 돈이라고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갖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여야 나뉘어 싸우는 것을 보시면서 ‘저놈들 참 웃기구나, 머지않아 죽을 놈들이 말이야’ 하실 것입니다.

나는 이렇듯 차원이 다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미물로서 홀로 평생을 살다가 죽으면 얼마나 서럽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으려고 하고, 늘 편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인 것이 뭔가 있을지 모른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또 그런 삶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두 가지 두려운 것, 치매와 편견에 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처음 김대중 대통령을 만났던 시절, 모두가 그 분을 빨갱이라고 했습니다. 빨갱이라는 말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종북이라는 말이 난무합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저는 한일회담 비준에 반대했습니다. 1965년 6월 22일 비준되던 날 저는 서울법대 계단교실에서 마지막 단식 200시간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지금으로 말하면 행정고시였던 3급 임용시험에 합격했지만 나는 임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백수건달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셨고, 며칠 후 대학운동권을 같이 했던 이협 선배가 보자고 해서 김대중 선생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1시간 동안 별 볼일 없는 20대 후반의 정치 지망생을 데려다가 당신의 3단계 통일론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날 감상적 민족주의자로서 통일지상주의, 지금의 통일대박론에 빠져 있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DJ가 실현 가능한 방법론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DJ한테 그렇게 뻑간다고들 말합니다만 난 뻑갔습니다.

바로 그날 내가 ‘사부로 모시겠습니다’고 한 다음 DJ는 단 한 번도 내 뜻과 다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분은 그대로 나한테 모범 샘플이었습니다. DJ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이 받는 오해 중 결정적인 것이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빨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 빨갱이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수의 가치라면 그 분은 왕보수였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국가가 좀 지원해줘야 한다,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진보라면 그분은 왕진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이런 편견의 세상을 넘고, 이분법적 세계를 넘어, 좌우이념,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 통일대박 되는 그날 까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잘 간수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자리에 계신 CEO분들은 리더십을 갖춘 분들이기 때문에 자가깨나, 눈이오나 비가오나 늘 생각하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문에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은 견(見)이라고 쓰고, 두루두루 마음의 심안으로 보는 것은 관(觀)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보는가가 인생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를 세계관,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를 역사관이라고 해서 관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100미터 되는 산을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5-10미터에서 보는 세상은 그 앞에 나무가 있다, 그 옆에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는 것입니다. 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여기만 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앞에도 산이 있네, 그 만큼 알게 됩니다. 90미터 올라가면 산 옆에 산이 있는 산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0미터 정상에 서기 전까지는 그 산의 뒤를 볼 수가 없습니다. 정상에 서는 순간은 그 뒤에 바다를 보는 순간입니다. 제일 꼭대기 정상에 서는 길은 편견이 없어지는 바로 그 길이고, CEO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그 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끝까지 정상에 간 사람을 인류에서 뽑는다면 세 분이 있습니다. 우선 공자입니다. 공자는 15미터쯤 올라가서 뜻을 세웠습니다. 지학(志學)이라고 합니다. 30미터쯤 올라가서 그분은 ‘섰다, 이제 알았다.’는 이립(而立)하셨다고 합니다.

40미터에 가서 불혹(不惑), 끊임 없는 인생가도에서 유혹이 많은데, 예를 들면 ‘여기까지만 가, 좀 쉬었다 가’ 등등. 그런데 ‘아니야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50미터쯤 올라가서 느끼신 것이 이제 내가 왜 이 길을 가는지, 하늘이 내게 무엇을 시켰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지천명(知天命)입니다. 60이 되니까 이순(耳順)의 경지, 무슨 얘기를 들어도 다 알아 듣는 것입니다. 70-80미터는 불유구(不踰矩)라고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거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자님도 70에 가서 불유구의 경지에 갔으니까 여러분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같은 분은 한 세상 꽃 같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신약에 나오는 것은 3년간의 행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원죄를 내가 다 지고 가겠다고 하신 겁니다. 이런 경지는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제일 마지막 경지인 것입니다. ‘나는 인류를 위해 이 자리에서 죽는다’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분인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세상에 발 딛고 나자마자 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위로 하늘아래 나홀로다. 외롭도다. 외롭다는 것은 나홀로 정상에 섰다’는 것입니다. 열반의 경지이고 해탈의 경지입니다. 너와 내가 없어지는 그러한 경지인 것입니다. 삶과 죽음에 다 통달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마지막 경지를 목표로 해야 살맛나는 것입니다. 그냥 헛되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너무 인생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반론도 있겠습니다만 CEO는 정상에 서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왜 정상에 서야 하는가? 그 이유는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것입니다. 정상을 목표로 살면서 자유로워지는 그러면서 내 인생과 내 기업과 내 아내와 가족이 함께 되는 그런 세상이 목표가 돼야지, 그렇지 않으면 서러워서 못살고 중간에 외로워서 못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정상의 경지까지 가야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게 당신은 그렇게 살았냐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기 있다’라는 말은 뻥이라도 가끔은 나도 합니다. ‘우리 같이 갑시다’라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편견이 없어지는 관(觀)으로 보면 지금 우리 인생, 역사, 세계라는 말을 하기 전에, 정치의 근본이 뭔가, 정치지도자란 도대체 뭔가, 여기 계신 CEO들은 뭔가, 이런 근본적인 관을 확립하고 세상을 사는 것과 없이 사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다른 것 말고 이런 것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면 보람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근본에 관해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치는 두 가지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코란, 하나는 칼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둘 이상이 모여서 살아야 합니다. 혼자서는 못 삽니다. 그러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고, 공동체를 만들려면 질서를 확립해야 하고, 질서를 잡으려면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니면 홉스가 얘기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질서를 잡으려면 norm, 규범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서열을 짓는 것입니다, 누가 지도자고 그 다음 등 1번부터 번호를 매기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바로 그 힘(칼)이 있으려면 코란 즉 명분이 받쳐줘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힘만 갖고 기업을 운영할 수 있습니까? 힘만 갖고 구성원들을 뜨겁게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까? 말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은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말은 논리입니다. 말은 대의명분입니다. ‘내가 너를 꽃으로 부르기 전에는 너는 꽃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꽃으로 부르는 순간 너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유명한 김춘수의 시입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이지만 인식론의 기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은 대한민국이 앞날을 위해서, 우리 기업의 성취를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CEO의 기본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라는 공동체 최고단위의 지도자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 책임제하에서는 대통령이 거의 결정적입니다.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나라가 전혀 달라집니다. CEO가 바뀌면서 회사가 바뀌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이런 정치의 참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은 마키아벨리라는 사람입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본질을 권력(힘, 칼)에서 봤습니다. 권력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잡으면 권력을 유지 관리해야 하는데 그 요령이 정치학의 기본입니다. 그 전에는 수사학이란 것만 있었는데, 마키아벨리가 정치학이란 말을 처음 시작한 것입니다. ｢군주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권력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통치의 기본 요령에 관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란 다스릴 정(政) 다스릴 치(治)인데, 다스린다는 것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CEO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숙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권력의 쟁취에 있고, 그 둘은 공동체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해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정치의 본질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위계를 세우고 질서를 잡는 것입니다.

정권을 잡아서 유지 발전시킬 수밖에 없는, 정권을 잡아야 내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지, 정권을 잡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CEO가 되지 못하면 아무리 이익을 내려고 해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CEO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각 이해관계를 조정, 통합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두 가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국가경영능력이고 또 하나는 국민을 통합해 내는 능력입니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해 낼 수 있어야 힘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만인대 만인의 싸움이 아니라 만국가대 만국가의 무한경쟁 시대입니다. 지금은 경제전쟁이고 정보전입니다. 이런 경쟁시대에 있어서 국가의 리더십을 누가 갖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정치가 무엇입니까’라고 제자 자공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족병(足兵)’이라고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족식(足食)’, 밥을 먹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말로 하면 경제입니다. 국민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요체입니다. CEO의 입장에선 직원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민신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 신뢰다.

‘이 셋 중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물으니까, ‘거병(去兵)’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거식(去食)’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국방도 경제도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니까 그때 유명한 논어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설 수가 없어. 치자와 피치자 간에 구성원 상호간에 신뢰가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국가가 될 수 없는 거야. 국가가 아닌데 무슨 안보를 하고 경제를 해?’ 너무나 단순한 이치를 2,500년 전에 공자가 한 말입니다.

정치는 우선 통치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보하고 경제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뢰,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면 대통령을 불신하면 기본이 안 되기 때문에 정치 자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신뢰입니다.  

지난번에 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진 것은 신뢰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것 떠나서 신뢰를 얻어서 당선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적극적인 마니아층 지지자가 25%있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끊임없이 지지하는 그러한 층입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지지층을 30%이상 갖고 있다고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 ‘하면 된다’는 것으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앞장서서 이룬 리더십, 누가 봐도 안보와 경제를 이뤄낸 그런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플러스되어 지금도 안보도 잘하고 경제도 잘 할 것이라는 기대와 지지가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여성대통령으로서 부패에는 물들지 않겠지 하는 신뢰가 기본적으로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국민 정서 속에 불쌍하다는 것이 또 있습니다. 부모가 흉탄에 사라지고, 시집도 못가고, 이런 짠한 기본적인 정서가 합쳐져서 아무리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30%대의 지지기반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원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안보도 철저히 하면서 경제도 살리는 대박대통령이 되시고, 그래야 우리나라가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분이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그래야 우리 국민들이 잘 사는 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합니다.

내가 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내에서 서로 싸우다 보니 누구의 편이 아닌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나를 비상대책위원장을 시켜서 했습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전에 ‘안보문제, 민생문제에는 여야가 없다’라고 하면서 같이 갔습니다. 이번에 안철수당과 통합하면서 또 같이 간다고 합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야를 떠나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불통 이미지가 있습니다. 안보 잘하고 경제 잘하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빵점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치적은 덧셈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곱셈입니다. 둘 다 100점을 맞아도 신뢰를 잃어버리면 국민통합이 안 되고, 소통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빵점이면 곱하기로 해서 결국 빵점짜리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에 못 남게 됩니다.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에서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고 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불통하면 병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 몸을 갖고 얘기한 것입니다. 우리 유기체는 정부의 각 부처와 똑같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통하지 않으면 아파서 병이 나는 것입니다. 통즉불통(通卽不痛)이다. 통하면 상하가, 여야가, 지역 간에 소득별 간에 세대 간에 성별 간에 종교 간에 소통하면 통즉불통인 것입니다. 병이 낫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이치인데, 이런 것에 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통즉 통이요, 통즉 불통’이라는 동의보감에 몸에 관해 허준선생님이 쓰신 말이지만 나는 국가에서도 똑같이 해당된다고 보고, 세계질서에도 똑같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관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인류가 최초로 평화의 세계제국을 만든 나라는 로마다. 그 시대가 팍스로마나였다. 최초의 세계국가였다. 그것이 분명히 서진해 간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까지 Great Britain의 팍스브리타니카, 오대양육대주를 누리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팍스아메리카나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경찰국가 노릇을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서쪽으로 가면 태평양으로 옵니다. 태평양 시대, 팍스파시피카라고 합니다.

서서히 이제 아시아 시대가 됩니다. 팍스아시아나에는 누가 뭐라 해도 아시아 3개국의 시대가 됩니다. 한국의 팍스코리아나, 일본의 팍스야파나, 중국의 팍스시니카. 결국 대한민국, 중국, 일본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주인공 역할을 여기서 바로 우리가 담당해야 합니다. 100년, 1000년 이후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과 북의 문제도, 전라도 경상도의 동서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세계에서 경쟁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더 크게 보면 인류가 하나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주도해 가는 아주 좋은 기회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에게도 바로 이러한 기회가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진보니 보수니 싸웠습니다. 수구파니 개화파니, 대원군은 보수의 전형이었고, 민비는 개화파였습니다. 그리고 얼토당토않게 일본이 와서 다 먹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35년의 깜깜한 세상을 보낸 것입니다.

지금도 미·일·중·러 4국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옛날과 똑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4대강국이 똑같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선조들이 우왕좌왕하고 갈팡질팡하면서 망한 것과 같이 우리가 또 진보니 보수니 하고 싸우면 무슨 망신입니까. 다 소용없고 힘을 합해도 모자라는 상황입니다. 여야가 여기서 싸워서 이기면 무슨 소용입니까? 계속 싸우면서 시간만 빼앗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양보해야 하는가? 힘센 사람, 가진 자, 대통령과 여당이 양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책임은 역사에 대통령이 지는 것입니다.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고 소통합시다, 얘기 합시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닙니다’라고 나서면 누가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반대하면 국민이 나서서 심판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언론에게 확고부동한 가치관이 있었습니다. 언론은 자와 같습니다. 자로 딱 제서 시시비비를 구분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편견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요즘 제대로 된 신문을 못 봅니다. 진보건 보수건 한쪽 진영에 참여해서 그쪽만의 시각만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제 역할을 해야 정의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개척하는데 힘을 합치려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을 안 해도 저절로 되는 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욕만 하지 마시고, 저 자식들 만나면 매일 싸움만 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민주주의는 원래 싸움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싸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힘으로 몰아 붙여서 그냥 통치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선거로 99% 참석률에 99% 찬성률로 당선되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4대 권력기관 동원해서 국정원, 국세청, 검찰청, 경찰청 갖고 힘으로 몰아 부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북한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아니요’라는 말을 들어주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틀렸습니다’라는 말을 받아줘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 못하면 민주주의가 아닌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아니요’라는 비판의 자유가 있을 때 성립하는 것입니다. 언론, 보통 사람도, 시민단체도, 그리고 촌부도 장사하는 사람도 모든 사람들이 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세종대왕은 왕조시대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간원(司諫院)이라는 제도를 뒀습니다. 세종대왕은 참 영특한 임금이었습니다. 민주주의, 민본주의를 처음 시작한 것이 세종대왕입니다. 세종대왕은 ‘아니요’라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 대사간(大司諫)이란 것입니다.

최만리라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그는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논리를 개발한 사람입니다. 훈민정음 창제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임금한테 ‘아니요, 사대부만이 아는 것을 저런 버러지 같은 민생들한테 전부 가르쳐주면 우리는 통치를 어떻게 합니까. 반란이 일어나고 큰일날 일입니다’고 계속 논리를 개발해서 올렸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최종적으로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통치자의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먼 나라의 예도 아닌 바로 세종대왕의 리더십이 증명해줍니다.

세종대왕은 김종서로 하여금 4군6진을 설치하도록 하여 오늘날 우리의 한반도를 국경으로 만든 안보 대통령입니다.

세종대왕은 또 과학기술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장영실을 과감하게 발탁하여 물시계 등을 만들게 함으로써,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장영실은 당시 사대부도 아니었고 농공상(農工商)에도 미치지 못하는, 광대보다도 못했던 관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 장영실을 과감하게 발탁한 세종대왕의 안목과 결단이 바로 리더십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음악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궁상각치우를 만들었고, 또 당시 구전으로만 떠돌던 방아타령을 채보하여 문화적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모두 다 세종대왕의 빼어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여론조사를 해서 20년여에 걸쳐 세금제도인 공법(貢法)을 만들어 조선의 전세제도(田稅制度)를 확립하였습니다. 그렇게 민생을 살핀 것입니다.

한 임금이 이렇게 영특하면 얼마나 역사를 바꿀 수 있는지를 그냥 증명하는 것이 세종대왕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러한 위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개혁하는 일들에 소홀히 하면 안 되고, 이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